의학입문 수업에서는 진화의학을 개괄적으로 배우고 여러 질병의 진화적 관점을 공부한다.

그런 진화의학에서 선구자적인 학자인 네스교수의 < 이기적 감정>을 읽어 보았다. 수업시간에 이야기한 질병에 걸리는 6가지 진화적 과정에 대해 다시금 복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의 '감정'이 불러 일으키는 질병인 '정신질환'의 진화적 관점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든 생물은 진화한다. 진화의 기본 원리는 '자연 선택'이다. 가장 환경에 잘 맞 는 생물의 특질이 다음세대로 전달되며 그렇지 않은 유전적 특질들은 도태된다. 어떤 우월성 따위는 없다. 가장 번식에 도움이 되며, 다른 종의 번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전적 자질들을 다음세대로 전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질병' 을 바라본다면 누구든 의아한 마음을 품을 것이다. '질병'은 인류의 생존과 번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 졌다. '아니 진화를 해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체는 질병이나 노화따위 없 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그러한 유전자를 자손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 가?' 아니었다. 진화의학이 강조하는 바는 유전자는, 즉 자연선택은 우리의 건강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조금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선택은 종의 번 식과 양육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년기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는 사실은 유아기의 생존률을 높인, 성인기의 번식에 관여하는 유전자 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노년기 질 병은 종의 번식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유전자는 자손세대로 전달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감정'은 어떠한 진화적 이유 로 여전히 우리세대에게도 남아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목표는 자연선택이 인간을 취약한 상태로 남겨둔 이유를 묻는 것이 정신장애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P. 26)라고 하며 진화적 관점 으로 정신장애를 바라보고 그 치료에까지 발을 내딛으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는 명확한 기준이 부족했다. 증상과 질병을 혼 동하는 VSAD(Viewing Symtoms as Disease)같은 초보적인 실수를 한다. 증상은 질병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몸에 오는 통증이나 부정적 감정들은 그 자체가 질병이 아니다. 신체 시스템이 문제가 생겼다고 '경고'해주는 역할이다. 그렇다면 우울, 무기력, 분노등의 감정은 그 자체를 치료하기 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 해소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신의학은 뚜렷한 지침은 없고 획일적인 진단 과 여러가지 치료를 진행한다. 진단에 있어서 유형별로 정신장애를 분류하기 보 다는 그 척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지금까지는 정신질환의 근거 로 '뇌의 병변'이나 질병 유전자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발전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정신장애의 원인을 '신체적 원인'의 측면보다는 다른 '뇌의 회로'의 측면에서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유전자와 감정은 우리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 진화론의 기본적인 개념은 '유전자 변이가 번식이 가능한 시점까지 살아남은 자손 수에 영향을 준다면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 종의 성격이 변할 것이고, 평균적인 개체는 자손 수가 가장 많은 개체들과 닮아갈 것이다.'(P. 70) 어디에도 유전자 전달자의 행복과 관련된 맥락은 없다. '번식'과 '유전자 전달'이 생명체의 목적이자 이유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체와 정신의 질병에 걸린다. 심지어는 '1964년에 해밀턴은 어떤 유전자 변이가 개별 개체의 생존과 번식 확률을 감소 시킨다 해도 그 개체와 똑같은 유 전자의 일부를 가진 동종 개체들에게 이롭다면 그 변이는 보편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P. 72) 에서 볼수 있듯 전체 개체의 번식을 위해 개별 개체의 번식률을 낮출 수 있다면 그렇게도 한다.
진화적으로 우리가 질병에 걸리는 이유는 다음의 여섯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불합치이다. 지금 인류의 유전자는 급속도로 변화한 현대 환경을 따라 잡지 못했다. 불과 몇 만년전의 원시시대의 환경은 현대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치우친 영양, 거주 환경, 운동 부족등은 현대인만 누리는 환경이다. 물론 의학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죽을 수도 있던 충치와 같은 가벼운 질병들은 해결 할 수 있 지만, 변화한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는 우리 몸은 당뇨, 고혈압, 관상동맥 질환, 비 만등의 질병을 갖게 되었다. 환경과 우리 몸의 미스매치, 즉 불합치는 첫번째 질 병의 원인이다. 두번째는 감염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감염은 계속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양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병원체를 잡 기 위한 항생제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선택된 세균들은 계속해서 항생제 개발속도 보다 빨리 진화하고 있다. 셋째로는 '제약'이다. 진화는 환경에 맞추어 가장 잘 적 응하는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전해준다. 하지만, 진화는 시스템의 재구조화가 아니 다. 진화의 경로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지, 혁신적으로 재구조화되지 않는다. 맹
점으로 인해 한계가 있는 우리눈의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네 번째는 '진화적 트레이드오프'이다. 어떤 유전자도, 어떤 특질도 완전할 수 없다. 먼 곳을 보는 눈을 갖춘다면, 색채를 구분하는 능력과 주변시야를 잃게 된다. 이 처럼 '비용 대비 이득'이 최대화 되는 지점에서 자연선택이 일어 난다. 저자는 '인 간의 몸은 진화적 트레이드오프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라고 까지 이야기 했다. 다섯번째는 재생산이다. 우리의 몸은 행복이나 건강따위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손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번식에 도움 이 되는 방향이라면, 건강과 같은 가치를 희생하기도 한다. 여섯번째는 방어반응 이다. 우리 몸은 시스템적으로 경보체계를 가지고 있다.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생 길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면, 선제적으로 반응한다. 열을 내거나, 기침을하거나 감정적으로 분노를 하거나 우울해 진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경보체 계를 책에서는 '화재감지기 원리'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간혹 불필요하거나 과도하게 경보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지만 이 화재감지기는 실제 화재상황에 대 비해 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 가치가 있다.
우리는 종종 불안, 우울, 화, 질투, 죄책감 등 감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는 감정을 다스리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 너머를 판단하지 않는다. 즉 왜 그러한 감정이 오고,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감정 그 자체를 통제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감정은 증상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몸에 열이 나거나, 기침이 날 때 열이나 기침 그 자체를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증상을 일으킨 원인을 확인하고, 치료한다. 감정도 마찬가지 이다. 감정도 그 감정 자체를 질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인에 대한 증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앞서 증상 즉 경보체계는 어떤 시스템의 오류를 경고한다고 이야기했다. 감정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한다.
'감정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를 위한 것이다.'(P. 92) 감정은 또한 유전자 전달을 위한 간접적인 역할을 한다. 재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인 위치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재생산이 힘들어 질 수 있는 상황을 경고하기 위해 소외감,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으로 우리에게 반응한다. '감정은 특정한 '상 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특별한 상태로 바라볼 때 이해가 더 잘된다. 유 기체의 여러 측면을 조정해 특정한 상황과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도록 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말이다.'(PP. 98-99) 즉 사회적 상황에 잘 대처하도록 도와주 는 심리적 장치이다. '진화적 관점은 감정을 형성한 힘들에 근거해 단순한 정의를 제시한다. 감정이란 어떤 종의 진화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도전적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생리현상, 인지, 주관적 경험, 얼굴 표정, 행동이 특별하게 조정된 여러가지 상태를 가리킨다.'(P. 99) 즉 감정도 진화적으로 채택된 인간의 심리 기능 이라는 이야기이다.
주관적 감정은 보편적인 한편 감정을 느끼는 방식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문 화는 체중과 혈압 같은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감정에도 영향을 끼친다'(P. 104). '영어권에서 쓰이는 '감정'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 개념이지만 뭔가를 느끼는 경험 자체는 보편적이다. 공포, 기쁨, 슬픔, 수치와 같은 몇 가지 감정도 보편성을 띤다.'(P.105) 그러나 통증이 과도하거나, 심각한 고열이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 듯, 감정이 과도하게 많거나, 적은 경우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경우 감정은 유용 함을 넘어 잘못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치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진화적인 관점은 '감정에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감정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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